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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을 체계화하는 철학적 신학

 

 틸리히의 주 저서는 단연코 <조직신학>이다.  조직신학이라고 번역하였지만 그 뜻은 '체계적인 신학' 즉, 신학의 '체계화'를 가리킨다. 하지만 틸리히의 조직신학에 대한 평가는 '체계'라는 발상의 전환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그가 개진한 교리 내용이 자신의 기존 이해에 부합되는가의 여부만이 관건이 되어버렸다. 틸리히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용'보다는 '형식'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그의 조직신학을 이전의 교의학 정도로 간주해버리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그의 독창적 통찰을 헤아리려는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 오도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표현으로 그의 학문과 사상을 신학적으로는 '철학적 신학', 철학적으로는 '종교철학'이라 부르기로 하자.

 철학적 신학은 고전 시대에는 주로 '자연신학'이었다. 자연신학은 자연을 창조 행위의 결과로 보고 이로부터 원인인 창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오늘날 틸리히를 가르켜 철학적 신학이라고 할 때는 사뭇 다른 뜻을 지닌다. 틸리히의 철학적 신학은 철학과 신학이 동가적인 관계로 형식과 내용을 엮어낸다. 그는 이 시대의 사유와 이해에 걸맞은 방식으로(철학으로) 그리스도교의 내용을(신학을) 재구성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면에서 그의 학문과 사상을 철학적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철학적 신학과 종교철학

 

 앞 선 논의에서 틸리히의 사상을 '철학적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그리고 이제 더 나아가 그에게서 '종교철학'도 끌어내고자 한다. 포에르바허,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 현대를 연 철학자들의 영향으로 우리 시대는 반종교의 단계를 거쳐 무종교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서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꾸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만으로 불충분하고, 그리스도교 신학의 테두리 안에 머무를 일이 아니라 '종교'라는 일반 범주로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학 안에 하나의 과목으로 분류되었던 '종교철학'을 그리스도교 밖의 다른 종교들을 포함하여 사회 문화 일반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로 삼아야 한다. 이는 종교철학이 특별히 어떤 위상을 지닌다기보다는 특정 종교를 그 종교의 테두리를 넘어서도 소통 가능하도록 뜻풀이를 하려는 근본 동기를 지니고 있어서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하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틸리히의 사상을 일차적으로는 '철학적 신학'이라고 하겠지만 그의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종교철학으로 분류하는 것이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틸리히는 종교가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정형화하고 개념화함으로써 오히려 인간 해방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거스르고, 도리어 억압하는 모순에 이르게 되는 현실의 역리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종교 자체의 생리적 구조뿐 아니라 인간의 개입과 관여에 의한 왜곡이 그러한 모순을 피할 길 없게 만든다고 질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부를 찌르는 통찰을 전개하는 그의 종교철학이 그 내용에서 다소 난해하고 구조가 복잡하다 보니 안타깝게도 공유되는 데에는 다소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경계를 넘나드는 사상의 편력

 

 틸리히의 사상 계보를 살핀다면 철학사적으로는 플라톤에 잇대어야 하겠지만, 신학적으로는 어거스틴-프란체스코 전통까지 거슬러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근대로 건너와서는 독일관념론을 장식하는 피히테, 쉘링, 헤겔을 들 수 있다. 그는 철학박사 논문은 쉘링의 자유 개념을, 철학박사 논문은 쉘링의 죄의식 논의를 다루었다. 박사학위 논문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경계선에 선 사람인지 알 수 있다.(심지어 그의 자서전의 제목은 "On the boundary, 경계선 위에서" 이다.) 그는 철학과 신학의 경계, 근대와 현대의 경계 그리고 자유와 죄의식의 경계에도 서 있다.

 앞서 신학의 체계화라는 뜻풀이에서도 체계라는 표현은 사실 근대의 유산이기도 하다. 반면에 상관은 현대라는 시대정신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다. 말하자면 틸리히가 상관을 체계로 담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가 근대와 현대의 경계에 서서 이를 이으려는 통찰을 엮으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틸리히는 '상관'을 '체계'로 잡음으로써 체계가 움직이는 작동방식을 사완으로 설명하려 한다. 틸리히는 쉘링과 헤겔로부터 출발한 상관을 상호로 설명하려는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그를 발전시켜 현대 철학자들과의 교류 속에서 상관의 의미를 향한 해석학적 통찰을 함께 공유하면서도 자기 나름대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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